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 클럭스 클랜 (문단 편집) === 1차 창설 ===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공화당(미국)|공화당]]이 [[미국 의회|연방의회]]를 장악해 [[미국 남부]]에서 [[군정]]을 실시하며 남부 재건을 시작하자 이에 반발한 남부군 참전용사들이었던 [[민주당(미국)|민주당]][* 지금은 진보 성향의 정당이지만 이 당시에는 남부를 기반으로 하는 보수 정당이었으며 반대로 공화당이 진보 포지션이었다.] 출신의 백인 6명에 의해 1866년 조직했다. 이후 남부군 출신의 장교와 병사들을 꾸준히 받아들여서, 조직이 커지자 당시 남군 최고의 기병사령관으로 이름을 떨쳤던 노예상인 출신 장군이자 민주당 전국구 대표였던 [[네이선 베드퍼드 포레스트]]를 초대회장으로 임명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 이름은 여기서 따 온 것이다. 작중에서는 대충 이불보를 뒤집어 쓰고 다닌 사람 정도로 짤막하게 언급된다.][* 간혹 네이선 베드퍼드 포레스트를 창립자라고 오해하는데, 베드퍼드 포레스트는 KKK가 창립되고 2년 후에 조직에 가입했다. 단지 초대 회장이 될 정도로 이미 명성이 높았던 인물이고 실제로 그의 명성이 조직의 성장에 크게 영향을 미치긴 했다.] 놀라운 점은 원래는 [[레크리에이션]] 집단으로 결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친목을 다지며 함께 춤추고 노는 게 일이었다. 설립 초기엔 나름대로 남부인들의 자존심 회복을 외치는 성명 발표와 시위행동을 하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창단되고 1년 정도 지나 슬슬 간부들 사이의 [[친목질]]이 시작되고 회장인 베드퍼드 포레스트가 [[영국계 미국인]]이라는 점을 들어 반발파가 만들어지는 등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레크레이션 집단답게 시시하고도 웃긴 문제로 갈등이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것은 간부 모임에서 KKK단 자신들이 특별해야 한다며 회장을 임페리얼 위저드[* Imperial wizard, 가끔 마법사가 나오는 게임이나 영화를 KKK단과 엮는 것이 이 때문이다.]라 불러야 한다는 [[중2병]] 발언을 내놓더니 얼마 후엔 위계제도를 공식안건으로 내놓아 KKK단 회장의 공식 명칭을 임페리얼 위저드로 바꾸고, 더 나아가 주요 간부는 [[드래곤]], 주요 간부의 보좌직들은 [[타이탄]], 보좌직들에게 지시를 직접 받는 현장 실무자들은 [[사이클롭스]]라고 부르자는 맛이 간 행보를 밟는다. 베드퍼드 포레스트는 이들의 행동을 말렸지만 [[민주주의]]를 앞세운 간부들의 [[중2병]] 발언에 밀렸다. 허나 "[[중2병]]들 상대하기 짜증나니 그만둘래요"라고 외치고 중도하차하자니 자신을 KKK단의 회장으로 밀어준 사람이 하필 [[남북전쟁]] 당시 남군 최고의 [[영웅]]이었던 [[로버트 E. 리]] 장군이라 이대로 물러났다간 리 장군의 평판에도 영향이 갈 것 같고 무엇보다 '''회원들이 베드퍼드 포레스트의 탈퇴를 인정하지 않았다.''' 불인정 사유는 [[해병대|한 번 회장은 영원한 회장이다]]라는 회칙에 기반한 논리였다. 학벌과 경제력, 평판과 신임에 큰 책임감까지 가지고 있던 베드퍼드 포레스트를 훌륭한 [[바지사장]]감으로 본 회원들이 회칙과 민주주의를 앞세워 베드퍼드 포레스트를 억지로 묶어뒀고, 이후 회장의 제지를 씹곤 KKK단의 활동을 엉뚱하게 밀고 가더니 [[정당방위]]를 빙자한 흑인대상 폭력사건까지 줄줄이 일으켜 사회적인 문제집단이 된다. 북부가 흑인 표를 흡수해 정치공세를 펴는 점을 타파하기 위한 백인 친목모임으로 계획된 KKK단이 되려 흑인 표를 집결시키는 사건을 연달아 일으키자 현실주의자였던 포레스트는 KKK단이 더 이상 남부의 자존심 회복과 권리 신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선언했으며 KKK단 회칙의 회장은 일년에 한 번 마음대로 활동을 정할 수 있고 회원들은 이의를 제기 못 한다를 발동, 반발하는 회원들의 의사를 씹어버리고 해체를 선언해버렸다. 이에 KKK단은 "너는 제명되었으니 이제 회장 아니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독립적인 활동을 계속해나간다. 방출된 포레스트는 경력으로 삼을 만한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자숙의 의미도 있지만 KKK단이 깽판치고 다닌 것에 대한 책임 문제와 배상 소송 문제도 같이 걸린다.] 말년에는 [[흑인]]에 대한 부당한 폭력에 반대하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이 과정에서 포레스트가 직접 흑인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흑인의 공민권 부여에 찬성했다는 설이 나와 진위 여부를 놓고 말이 많았는데 '''1877년 [[뉴욕 타임스]] 기사에 포레스트가 말년에 흑인집회에서 연설한 일화가 실려있다.'''[* 다만 말년에 좀 정신을 차린 것뿐이지, 포레스트는 본래 흑인 노예무역으로 부를 쌓은 인물이었고, 남북전쟁 당시 있었던 필로우 요새 학살 당시 수많은 흑인을 죽인 사건의 관련자이기도 했다.] 이후 1870년 연방법이 제정되어 정식으로 공권력에 의한 단체해산을 맞이했다. 해산 직전 이들은 연방법 제정이 [[흑인]]들의 표를 얻어 남부를 탄압하려는 북부의 음모라 주장했으나 당연히 먹히지 않았으며, 해체 후 음지에서 계속 사고를 치며 점점 더 막장 집단으로 변모해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